1997년... 가을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SERI라는 시스템공학연구소에서 6개월 코스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전공이 컴퓨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때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름 열정만 있고..
노력은 안하고.. 그러던 시절.. 당시 다른 조에 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맑음이'라는
ID를 썼던 형이 기억난다.. 그 형으로인해.. 당시 그다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천리안에 '라우레시아'라는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연구소 이름을 따서 '쎄리'
라는 캐릭을 사용했다.. 지금보니 상당히 여성스럽다.. ㅎㅎ
어째든 당시 그 형은 상당히 고랩에 있었는데.. 이미 열심히 하셔서 그런지 좀 질리신 상태였다.
당시 기억나는 인물은 '주근발'이라는 캐릭이었는데.. 프리즘버그라는 것을 이용해 남들에게
심지어 생판처음 보는 초보들에게 까지 보호막을 헌신적으로 해주시는 고마운 인물이셨다.
어느새..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열심히 게임을 했고.. 아직도 기억나는 것들...
스파르타광장.. 아테네광장.. 입신.. 이집트.. 카이로.. 중국.. 악양? 강태공.. 버서커..
그리고.. 그렇다가.. 당시 '신조협'이라는 캐릭과 함께.. 그 게임내에서 사용자 방을 만들었다.
금화 와 평가를 모아서.. 운영자에게 주면.. 운영자가 일정하게 사용자방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당시 활동했던 방은 AKD라는 방으로 기억나는데.. 클럽짱이었던 신조협 외 다른 가입자들이
무지하게 어렸던게 기억이 난다.. 첫 결혼상대자.. 당시 중딩 여자애였던 '비키'
나름 동갑내기였떤 '라나', 동갑내기 '유지현' 얘 캐릭은 기억이 안난다.. 결혼한건 알고..
아마태라스... 백미르랑 승일이.. 아..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해여간 이놈들이랑은
군대가기전에 부산 광안리에 같이 여행도 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뻐하던 어린 남자동생도
있었는데.. 그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머리가 초록색에.. ㅜㅜ 흑흑..
해동성국.. 사이버펑크.. 그외...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이글을 쓰는거다.. 더 기억이 나지 않기 전에... 그렇게 열심히 하던 기억중에.. 슬펐던 기억도난다..
군대 휴가를 나와서 간만에 접속을 했는데.. 다들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녔었다..
'맑음이'라는 나에게 이 게임을 소개해줫던.. 그 형님이.. 실제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직도 그 형의 얼굴과 말투가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런지 모르겟는데..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당시 그 형의 나이가 24살 정도로 기억한다.. 굉장히 꽃다운 나이에.. 젋은 나이였었는데..
고속도로 12중 추돌로.. 생을 떠났다고 했다.. 군대에 있는 관계로.. 나는 장례식에는 참석하질 못했다..
뒤늦게.. 지금와서.. 검색을 해도.. 단 한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저세상에 가있다..
군대 제대.. 직전 3개월을 남기고.. 당시 '마군'이라는 분이.. 다시 라우레시아를 열었던게 기억이 난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지현이와.. 병장이라는 이유로.. 나름 라우레시아를 잡았지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이미 나의 머드게임에 대한 에너지는 군대가기전에 소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군제대와 동시에 어학연수를 가는 바람에.. 그렇게 라우레시아 와는 이별을 했다...
훗날.. 회사다니면서.. 다시 또 쥬데직파크 라는 머드에 또 빠져들었었고.. 그렇지만.. 임팩트가 남아있진 않다..
당시 라우레시아를 할때는 이야기나 데이타맨프로를 사용해서 ATDT 01420 이라는 모뎀을 통한 접속이었는데
매우 느렸으며.. 한 컴퓨터당 한개의 아이디만 접속이 가능했고.. 총 3개의 요금이 부과되던 시절이었다.
전화료, 천리안 이용료, 라우레시아 이용료. 도합 3개의 이용료는 한달에 30~40만원의 과금이 부과되던
정말.. 엄청나게 비싼 게임이었다. 한개의 아이디만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혼자 독고다이식으로
키우는게 한계가 있는 게임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협력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저기 일행을 모으려고
잡담을 하다가 일행이 모이면.. 탱커..치료사.. 전부공격이 가능한 애들을 모아서 셔틀이 다녔다..
내기억으로는.. 허접한 200~300의 레벨애들이 모여서.. 가다보니.. 툭하면 몰살을 당하곤 했다..
아주.. 꼬꼬마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가..모뎀을 다중접속.. 즉 PPP 연결..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인터넷과 같은 항시 접속.. 이 가능하다는걸
듣고.. 해보려고.. 무려 이틀밤낮을 시도한 끝에.. 모뎀으로 지금의 인터넷이 접속되던 때...
내가 느꼈던 컴퓨터로의 가장 큰 감동의 순간 인것으로 기억된다.. 후훗
당시 맑음이 형님이 하던 말이 기억난다.. "누구나 다하는 그래픽 머드..? 거기에 무슨 상상력이 있나?"
그랬다.. 지금 다시 본다고 해도.. 어이 없는 텍스트의 홍수... 거기에서.. 나는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가상의 공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매일매일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었다...
군 제대 후.. 지금까지 남들이 다하던 디아블로 2.. WOW.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무서웠다.. 중독도 무서웠고...
나의 소중하고.. 아름답고.. 너무나도 유니크한 추억.. 거기에 다른 색을 칠하는게 싫다...
이제 다시 서비스 한다고 해도.. 절대 빠져들 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젊은 날의...
순수함과.. 호기심이 아니라면.. 돌아 갈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런 추억들이다...
이제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겠지..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렇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직 그때의 기억에서 멈춘.. 맑음이 형님.. 그 새파란 나이에... 그를 생각하며... 그를 기리며..
이 글을 내 기억속에서 더 흐려지기 전에.. 남겨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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